명성황후시해사건의 배경
그러면 일본은 왜 황후를 시해했는가? 명성황후시해의 원인은 11년 전의 갑신정변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친일개화당의 쿠데타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일본과 협력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황후의 노선은 거일(去日)로 선회했고, 이를 두려워한 일본은 황후와 민씨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Ⅱ.본론
1. 흥선대원군
1) 대원군 등장의 시대적 배경
조선왕조는 15세기 말엽에 건국한 이후 국가 사회의 안정을 기하고 민족 문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비록,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두 차례의 큰 국난(國
명성황후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건인 을미사변, 바로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우리는 과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1895년(을미년)에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우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의 강화를 획책하였
2-1. 명성황후와 대원군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을 고종시대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명성황후시해사건』 최문형外,『명성황후시해사건』,민음사,1992
에 실린 「민비와 대원군」이라는 논문은 1992년 간행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식민사관에 근거한 편협한 역사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우선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이 일부러 아기에게 독한 산삼을 준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중전은 계획을 짜고 누구도 모르게 민승호(양오라버니)에게 지령하여 흥선 대원군의 반대 세력인 안동 김씨와 유생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이어 고종은 아버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흥선대원군의 전용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