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여러 사조가 소개되기 시작한 193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제국주의적인 정치적 위기가 생겨나고 경제공황이 심화되어 국내외적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시기였으며 내부적으로는 센티멘털 로맨티시즘과 목적주의문학을 거부하고 좀 더 자유로운 형식과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문단은 카프가 주도해 왔고, 카프 계열의 작가들은 30년대에 와서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30년대 초반은 김영랑, 박용철을 중심으로 순수 기교적인 경향의 시문학파와 김기림 등의 구인회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시파가 서로 일정한 영향을 주면서 문단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1939. 10.)
임을 자각하여 고도의 기술로 시어를 다듬어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시문학파와 그 맥락을 같이 하나, 이들은 이미지와 내용, 형식의 조화를 중시하며 문명에 대한 감수성을 기초로 해서 혁신적이고도 실험적인 작품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이 한창 꽃피우던 시기에 그 수명을 다하고 1930년대 후반기를 전후해서 등장한 서정주, 유치환, 김상용, 김광섭, 김현승, 오장환, 이육사, 박남수, 오희병, 등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그들은 각기 개성적인 시작태도를 보여 주고 있지만, 시문학파의 정신을 계승하고, 모더니즘에 반발하면
문학의 이념, 순수시를 표방한 『시문학』의 유미주의적 경향과 관념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감각적 기교주의와 반생명성에 반발하여 등장한 일군의 시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생명파의 일원으로는 『시인부락』(1936년 11월)을 중심으로 한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함형수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