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도 불구하고, 죽재 자신은 그의 신학적 작업의 넓은 범위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가 평생 바친 민중신학에 대한 그의 공헌에 한하여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실 ‘민중 신학’이라는 용어는 1975년 4월 죽재에 의해서 처음 쓰게 되었다. 그의 신학의 주제로서 민중을 쓰
사상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의 사상을 간략히 살펴보고, 자유주의 신학이 한국 기독교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의 문제를 언급한 후 건전한 신학적 기초를 가지고 일선 목회에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토의를 통해 비판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Ⅱ. 종교개혁의 배경
1. 종교개혁 시기의 유럽
당시 유럽의 중심은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였다.
다시 말하자면 전 유럽의 막대한 권력과 부는 이들 몇몇 소수의 나라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림잡아 인구 4백만의 영국, 인구 8백만의 스페인, 1천 6백만의
비평이 그 전달과정에서 예수의 개별적인 말씀들이나 그에 대한 단화들의 형태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편집비평은 전체적으로 복음서 각각의 형성과정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견해는 한쪽 방향으로 좀 더 발전할 수 있다.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 관점과 그가 자료를 선택하고
신학적으로 윤색되지 않은 복음서이자, 가장 일찍 나타난 복음서란 것이다.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된 최초의 복음서임을 뒷받침하는 논증들은 다음과 같다.
(1) 마가복음 662절 중 대부분이 마태와 누가에 의해 사용되었고 50퍼센트 이상이 문자적으로 채택되었다. 마가복음 내용의 95퍼센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