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측천(武則天)’이라는 호칭이 더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름인 ‘조(曌)’는 ‘비출 조(照)’의 뜻을 나타내는 측천문자(則天文字)로서 해(日)와 달(月)이 하늘(空)에 떠있는 모양처럼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측천무후를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칙천무후'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즉
1. 생애와 시대적 배경
성은 무(武), 이름[諱]은 조(曌, 시호(諡號)는 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이다.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皇帝)가 되었던 인물로 무후(武后), 무측천(武則天), 측천후(則天后), 측천제(則天帝), 측천여제(則天女帝), 측천여황(則天女皇) 등으로도 불린다. 측천무후(則天
I. 서론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남녀유별’의 유교적 정신이 중국의 전통적 여성관을 형성해 온 뿌리라 할 수 있다. 유교의 여성관은 생활의 규범과 예제를 발전시켜 중국 전통의 윤리관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여성의 삶, 특히 지위와 역할부분에 있어서 깊숙이 자리 잡고 있
무측천(武則天: 624~705)의 본명은 무조(武照),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으나 고종이 죽은 후에 황제에 등극하였다. 황제로 16년간 재위하였지만 실제로는 50여년간 집권을 한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이다. 무측천은 황제에 등극한 후에 이름을 조(明 아래에 空이 있는 글자. 무측천이 새로 만든
무측천(武則天)의 아들인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중종(中宗)을 죽이고 권력을 얻으려 한 위황후(韋皇后) 및 그 딸인 안락공주(安樂公主)를 몰아내어 아버지 예종을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다. 716년, 28세의 그는 마침내 예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올랐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