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의 대, 내외적 치적(治績)
(1) 문무왕의 삼국통일문무왕이 재위한 21년 동안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백제부흥군과 싸웠다. 백제의 옛 장군 복신과 승려 도침이 이끄는 백제부흥군은 왕자 부여풍을 백제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고 주류성에 은거하며 신라와 당군에 대항하였
대왕암
토함산 뒤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바다. 이곳 해안에 서면 바다 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바다 경치를 돋우는 아담한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 혹은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다.
멀리서 보는 대왕암은 평
확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문무왕은 재위 21년만인 681년 7월에 승하(昇遐)하였다.
여기에서는 문무왕의 대․내외적 업적에 대해 살펴보고, 아울러 아직도 그 실체가 모두 풀리지 않아 우리나라의 역사상 하나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대왕암(大王巖)을 여러 방면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신라 사람들은 남산의 바위를 쪼아 부처님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남산의 바위 속에 숨어 있는 부처님을 찾아 드러낸 것이다. 부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여 경주 남산의 산과 바위를 온통 부처님으로 작업한 것이다.
불교유적 외에도 곳곳에 왕릉이 있고, 바위에 얽힌 전설들이 있어 남
사천왕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주실 중앙의 본존불 앞뒤 두 곳에 방형의 석탑대석(石塔臺石) 위에는 작은 석탑을 배치한 흔적이 보인다. 두 석탑은 현재 석굴에 남아 있지 않으며 그 중 하나인 대리석 오층탑은 일본에 반출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
이는 금당 앞에 쌍 탑을 배치하는 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