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도 하였다. 냉전기에는 양극의 접점에서 분단국의 수모를 겪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현재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4강에 둘러싸여 주변국과의 외교에 있어서도 힘과 능력의 격차를 실감하며 성공적인 외교협상의 선례들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정책에 협력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오키나와 반환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베트남 전쟁과 오키나와 문제를 중심으로 본토와 오키나와에서 미·일 안보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반환이 늦춰진다면, 미·일 관계에 큰 균열이 생겨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 전략은 주한미군에 대한 철수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덧 양국사이에는 동맹피로 증상 내지는 동맹표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내에서 가지는 전략적 가치와 동북아평화의 기여도를 충분히 인식하고
세계사 최초의 좌-우 간의 국제전, 양차대전에서의 연합군간 전쟁, 한민족 내전, 미소 패권 대리전쟁… 1950년 동북아시아의 상대적 약소국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수식하는 수많은 이름들이다. 이런 풍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현상유지의 수준에서 끝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엄
1. 서론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세계 경제 심장부인 세계 무역센터 건물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여러 국가들 위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다시피 한 ‘미국’이란 제국의 안보가 테러라는 바늘에 찔려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