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도 하였다. 냉전기에는 양극의 접점에서 분단국의 수모를 겪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현재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4강에 둘러싸여 주변국과의 외교에 있어서도 힘과 능력의 격차를 실감하며 성공적인 외교협상의 선례들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얻어냈다. 이렇게 미국은 마지막 고비를 넘겨 7월 22일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각각 2㎞씩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기로 합의하여 7월 27일 공산군 측의 북한군 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그리고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휴전협정(정전협정)이 체결되어 3년 1개월에 걸친 승패 없는 전쟁은 끝이 났다.
한국과 미국의 반대로 도외시되자 이것을 지위변경 문제로 바꾸어 논의하자고 내비친 것이다.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는 6.25전쟁 당시 유엔 안보리의 파병결의와 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이면서 한미동맹군이라는 두 개의 모자를 쓰고
정전에 대한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내걸으면서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게 되고, 미국과 중국이 철수하는 경우, 남한의 독자적인 힘으로 북진통일을 이루려는 의도를 내비치게 된다. 미국은 이러한 이승만의 반응이 나온 직후 “에버레디 계획”에 의해 유엔군으로 이승만 정부를 전복하는 계
정부 부처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양국 정부의 동상이몽은 실제 협상이 시작된 이후에야 인지되었고 양국이 서로 다른 치유 기준을 주장하면서 합의를 위해 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상 초기에는 미국과 한국이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했으나, 이후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