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은 이러한 파벌주의와 분열의 문제점을 유학생 사회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의미 없는 대립은 아무 것도 낳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나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한민족의 단결은 조국독립을 위한 불가결한 전제라는 것도 인식했을 것이다.
Ⅲ. 일제치하의 민족지도자
1.
그에게 큰 불행이었지만, 그 결과 그는 항일투쟁기간 중 일제의 회유공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같은 경험과 환경을 가지고 김일성은 이후 만주지역에서 조선인 및 중국인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의 한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생애와 수없이 많은 저작활동,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저희를 포함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함석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특히 사상적 측면, 즉 씨알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할 것
조만식의 생애
1883년 2월 1일(음력 1882.12.24)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내동 출생
1897년(15세)
포목상, 지물상 상업에 종사함(∼1904)
1904년(22세)
3월 13일 노일전쟁으로 인해 베기섬으로 옮겨 피난생활을 함.
한정교를 통하여 기독교 신자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