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우리에게는 그저 추상적 개념일 뿐이었다. 책 속의 ‘민주 열사’들은 우리에게 외계에서 온 다른 생물체 마냥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6.10 항쟁에서의 열사들이 우리또래의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었다. 21(당시 이한열), 23(당시 박종철),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은 20대의
운동권은 기존에
있던 곡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대신 스스로가 창작한 노래를 대중가요의 새로운 문화
로 채택해 갔다. 이를 통해 혁명성이 결여된 1970년대의 노래 대신 창작 민중가요 즉,
군가 풍의 행진곡과 가곡 스타일의 서정가요가 6월항쟁 시기의 가장 큰 유행 형태로
자리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70년대에 학생운동의 명맥이 끊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80년대에 학생운동은 다시금 양적 성장을 이룩하게 되는데, 이는 87년의 6월항쟁과 같은 거대한 학생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에서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79년을 끝으로 박정희의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다시
대한 전국 산발적 시위 발생 4.18 동국대와 약속된 시간을 어긴 고려대학교 서울시위
4.19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 경무대 진출
(전국적으로 부산·대구·광주·인천·목포·청주 등 주요도시의 수 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 전국의 주요도시 계엄령 선포
데모와 폭동의 지속, 일반시민들 가담
민주화 투쟁의 구심체로 결성하였다. 6월 10일 국민운동본부는 ꡐ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ꡑ를 개최하여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같은 날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급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