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정지용시집>에 담긴 시세계다. 다음 시집<백록담> 에는 <강수산><백록담><비로봉>을 비롯,대자연에 피신하여 일제말의 피로한 심사를 달랜것으로서 , 시형에 있어서 산문시를 시도했다. ꡐ그는 한군데 자안하는 시인이기 보다는 개롱ᄂ 시경의 개척자이려 한다ꡑ고 박용철이 말했듯이
시, 수필, 기행문이 수록된 《문학독본》을 출판한다. 이태준이 북으로 넘어가자 그는 "소설가 이태준 군 조국의 서울로 돌아 오라"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그는 정치보위부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된다.
2) 정지용의 시세계
30년대 후반 순수시에 대한 정리ㅡ시문학파 시인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은 1920년대초 백조류의 감상주의에 대한 극복을 부르짖으면서 시단에 등장, 나름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측하는데 성공하였다. 특시 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을 내세워 언어의 조탁과 전통적인 시가 율격에 기초한 시
시절에 독립단원 박열과 같은 방에서 하숙했고, 용아 박용철과도 이 때부터 사귀게 되었다.1921년 19세 때에 일시 귀국하여 성악을 전공하려 했으나 부친의 완강한 만류로 이를 포기하고, 다음해에 아오야마 학원 인문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던 중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23세 때에 개
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2. 김영랑의 시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