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1939년 박인환은 경기공립중학교에 진학했다. 이 무렵 그는 영화와 문학에 빠져들어 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과 일본 상징파 시인들의 시집을 탐독하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드나든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중학을 중퇴한 그는 한성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에 시 「열차」,「지하실」등 5편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4월 《민성》지에 시 「정신의 행방을 찾아」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경향신문사에 입사하고, 동인 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였다. 1950년
박인환(1926~1956)은 1)영화, 2)한국전쟁, 3)미국여행, 4)작가 이상 의 4가지 키워드로 설명하려고 한다.
1)영화
그는 영화평론을 즐겨 썼다. 경기중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영화가 지니고 있는 폭넓은 예술성과 함께 영화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서양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정신과 사상, 나아
문학은 그 명백한 목적의식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문학적 가치를 논하기가 어렵다.
반면, 전후시에서는 1910년대의 흐름이었던 ‘지속과 변화’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6. 25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소련과 미국의 이데올로기적인 혼돈의 장을 넘어서 북한의 소련식 사회주의와 남한의 미국식 민주주의
<후반기 동인>
1930년대 모더니즘 감각의 기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박인환·趙鄕·김규동·김경린 등이 주축이 되어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조직된 <후반기>동인들이었다. 김기림의 제자이기도 했던 김규동은 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이 이론적 근거와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