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이 일종의 보고서 형식으로 미국의 역사, 제도, 문물에 관해 집필한 것으로 1888년에 탈고되었다.
그 다음이 유길준(1856- 1914)의 <西遊見聞>으로 1889년에 탈고되어 1895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국한문혼용체로 단순히 서구의 제도와 문물에 대한 소개서 혹은 견문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개화사
갑오개혁은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 중심의 세계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광범한 제도 변혁이었다. 재정제도의 변화에 국한하더라도 대동법 이후 그 형식을 유지하고 있던 공납제도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으며, 궁내부가 창설되고 왕실재산의 관리
박정양이 고종에게 바친 ‘일본문견조건’에서 “쇄항·수구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감히 조의에 참여할 수 없었고 오직 개항·개화의 무리들만 크게 등용되어 높은 관직에 뛰어오르게 되었다”라는 문구에서 ‘개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른 조사 어윤종은 “일본이 혹 조금 먼저 개화된 것을 믿
)가 설치되고,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이 회의총재(會議總裁)에, 그리고 박정양(朴定陽)·김윤식(金允植)·조희연(趙羲淵)·김가진(金嘉鎭)·안경수(安駉壽)·김학우(金鶴羽)·유길준(兪吉濬) 등 17명이 의원에 임명되어 내정개혁을 단행하게 하였다. 그뒤 개혁운동은 3차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박정양, 오세창, 서동집, 이윤용 등으로서, 이들이 곧 1차 갑오개혁의 주도인물이 된다.
이들은 민씨 정권에 있어서 소외되던 인물들로, 이전의 주도적 관료층과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향이 공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성향과 관련하여 분류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친일적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