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반민특위의 와해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정치적으로 정국수습이라는 타협점을 찾았지만 활동에는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더구나 이미 국회 푸락치사건으로 구속된 이문언의원등 외에도 김약수부의장을 비롯 노일환, 서용길등 8명의 소장파 의원들이 보안법위반혐의로 육군 헌병대에 의해
반민특위에서는 민족정기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친일파 단죄에 나섰으나 이 역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의 방해책동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로 이 문제는 역대 친일정권 하에서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로 취급되지 부각되지 못하고 결국 역사연구의 한 영역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친일파 연구는
1. 반민특위란 무엇인가
① 반민법의 제정
반민특위의의 활동은 반민족행위처벌법, 약칭 반민법의 제정과 함께 이루어졌다. 당시 국회는 건국 초창기에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은 사회 혼란만 조장한다는 신중론과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해야한다는 강경론이
반민특위반민특위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의미하는 말로, 일제강점기 34년 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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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한국민주당
이승만曰,
해방 직후 : 혼란스러운 시기이므로 친일파를 당장 처단할 수 없으나 이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