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살펴본 조선의 국방태세와 방어실태에서 임진왜란의 초기에는 조선의 참패만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전쟁 준비가 거의 없는 가운데 일방적인 침략을 당한 조선의 전란 피해는 더욱 컸다.
2) 일 본
임진왜란이 일어날 시기 일본에서는 풍신수길이 전국시대를 끝내고 전국통일이 이뤄낸 상
등이 내치에 충실해야 한다며 시기상조를 이유로 이를 반대하자, 10월에 파견 중지가 결정되었다. 정한론이 중지되자 정한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하야하였으며(메이지6년 정변), 이때 하야한 사이고 다카모리 등은 1874년의 사가의 난부터 1877년의 세이난 전쟁까지의 반정부 운동을 이끌었다.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