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정의에서 음악은 의상이나 조명등과 마찬가지로 제1차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무용은 음악에서 독립한 예술이고 무용의 운동은 음악의 리듬으로부터 독립하여 무용적인 리듬(움직임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용적인 리듬은 매우 발달하고 복잡해서 작품에 따라서는 종래
발레가 쇠퇴해가고 있을 때, 외국의 많은 무용수들이 러시아로 건너왔고 페테르부르그에서는 고전주의 발레가 번창하고 있었다. 이 시절 프랑스 태생 마리우스 프티파의 등장은 러시아발레의 부흥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1862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프티파의 <파라오의 딸>은 그가 제국 발레의 주도
스키, 라벨, 사티, 프로코피예프 들의 작곡가들을 작품에 참여시켰으며, 발레리나 중심의 양식화, 인습화된, 더구나 토슈즈에 의해 기교 중심으로 치우쳤던 발레를 개혁하고, 종합예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지위에까지 올려 놓았다. 디아길레프 발레단이 해체되자 많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서유럽
극장에서 운명을 걸었던 작곡가들은 글린카,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곳에서 명성을 얻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오페라 가수나 무용수로는 샬리아핀, 갈리나 블라노바, 마야 프리세츠카야 등이 있다.
전속 발레단과 오페라단은 모스크바 아카데
러시아의 역사와 전설 등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그런 그룹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와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등이다.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 음악을 더욱 모방한 교향곡, 오페라 발레곡을 만들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