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또한 나름의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하는 백년전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전쟁은, 백년이라는 보기 드물게 긴 시간동안 진행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우선 놀라움의 대상이며, 또한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 진행된 커다란 사
프랑스에 있던 잉글랜드의 봉토를 놓고 일어났던 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12세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계몽사상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원의 물음에다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라는 현세(現世)의 과제가 덧붙여진다. 계몽사상을 기초로 하여 영국에는 권리장전, 프랑스에
백년전쟁을 거쳐 프랑스와 영국 모두 중세봉건국가에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바뀌게 되었다. 이로인해 민족의식이 생겨나게 되고, 서로다른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즉, 자신들만의, 자신들의 국가만의 의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3. 백년전쟁 전개와 잔다르크에 대한 민족의식 변천
백년전쟁은 보
③전쟁초반 영국의 전쟁 주도의 이유
백년전쟁 초기에 영국이 전쟁을 주도하게 되는 계기가 된 전투는 크레시 전투(1346년)와 프와티에 전투(1356년)가 있다. 이 전투에서 영국이 우세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우선 무기와 전술적인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프랑스군의 전술을 살펴보면, 당시 프
서양의 근대화는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의 근대화는 영국을 중심으로, 시민혁명을 통한 근대화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 양 국가는 다른 유럽국가보다 빠르게 국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양국 모두 시기적으로는 백년전쟁이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