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그리움을 고향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숙명을 지닌 1920-30년대의 고향은 한국적인 상황이 더해지면서 좀 더 복잡해진다. 식민지 시대에 고향이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어서 이를 하나의 개념으로 추상화시키기는 어렵다. 가령, 고향 상실을 국권상실의 상징적 의미
고향에 대한 회상이 백석 시의 공간의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고향은 인간에게 있어서 보다 큰 애착의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원하며 거주 공간인 집과 고향은 이러한 인간들의 염원적 중심이다. 백석의 고향에 대한 애착은 궁핍한 현실과 시대적 격변 속에
백석은 1935년 조선일보에「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정치·문화적 억압이 가혹했던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으로서 당대 민중의 고달프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내면화하면서 민족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세계를 부단히 동경하였다. 김소월의 고향이기도 한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한국 현대 시인연구下」, 푸른사상
-양문규,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논문, 「백석 시 연구- 시 창작 방법론 중심」 2002
-이동순, 「세기 전환기에 보내오는 백석 시의 메시지」 <실천문학, 세기말에 읽는 20세기 한국의 문제작가> 1999
-박경순, 논문 「백석시 연구-이야기적
문학파의 시
시문학파는 시전문지 『시문학』에서 연유하며, 주요 구성원은 박용철, 정지용, 김영랑, 이하윤, 신석정을 들 수 있다. 시문학파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민족 문학이 대립하던 시기에 문학의 순수성을 내걸며 모국어에 대한 관심과 기법에 관심을 쏟았던 해외문학파, 와 같이 반이데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