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옥편(玉篇), 자통(字統), 자림(字林), 그리고 문선(文選)이 있는데 그것을 더욱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경당은 지방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설치된 사립학교로서 평민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범엽의 후한서, 삼국지, 손성의 진춘추, 옥편, 자통, 자림이나 또 문선이 있어 이를 더욱 중히 여긴다.’ ‘궁리의 시가까지도 역시 서로 근면해서 길거리에 모두 엄옥을 지어 경당이라고 불렀다. 자제 중 미혼자는 거기에서 경을 외우고 활쏘기를 배웠다.’ 이와 같은 두 기록이 경당에 관한 자료의 전
범엽의「후한서(後漢書)」와 진수의 「삼국지(三國志)」가 있으며, 특히「삼국지(三國志)」는 소설「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관련이 깊어 소설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리고 소설에 있어서 만은 현실을 초월하려던 당시의 경향이 허구를 발전시키어, 후세 소설의 기반이 된 이른바 지괴소설(
범엽) 등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이들 나라의 언어는 하나의 어군(語群)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후에 고구려가 부여·옥저 및 예 등으로 이루어지는 어군(語群)의 지역을 통일함으로써, 고구려어는 이 어군을 대표하게 되었고, 후세에 그 자료를 남긴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