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어 高句麗語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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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어 高句麗語의 특징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대 언어의 역사에서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의 하나는 바로 부여계 제어와 한계제어와의 관계가 어떠했던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여계 중에서 고대 왕국의 선진이었던 고구려가 이룩되었다는 분명한 사실 하에 고구려가 바로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고구려어의 언어자료를 찾아 검토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고구려어는 오늘날까지 자료가 전해지는 유일한 부여계 언어이다. 고구려 언어는 부여의 언어와 비슷하였으며, 옥저(沃沮) 및 예(濊)의 언어와도 비슷하였다고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의하면, “東夷舊語 以爲 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腹有異”(동이의 옛말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의 일종이다. 고구려의 언어와 여러 가지 일들이 부여와 같은 점이 많고, 그 성질과 의복은 달랐다.)고 하여 고구려어와 부여어와의 관계에 대해 기술하였다. 또 옥저어와 고구려어의 관계에 대해서는,其言語與句麗大同 時時小異(그들(옥저)의 언어는 고구려와 대체로 같으나 때때로 조금 다르다)고 기술하고 있다. 예(濊)어와 고구려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其耆老舊自謂 與句麗同種…言語法俗 大抵與句麗同 衣服有異(옛 노인들이 오래전부터 스스로 일러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하였으며…예어의 언어와 법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고, 그러나 의복은 달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기술은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5세기,범엽) 등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이들 나라의 언어는 하나의 어군(語群)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후에 고구려가 부여·옥저 및 예 등으로 이루어지는 어군(語群)의 지역을 통일함으로써, 고구려어는 이 어군을 대표하게 되었고, 후세에 그 자료를 남긴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고구려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자료로는 금석문(金石文)과 옛 역사서에 나타난 고유명사의 표기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금석문에서도 본문 속에 삽입된 고유명사가 주가 된다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지명(地名)은 비교적 풍부한 자료를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의 지리지(地理志)는 삼국의 지명을 망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차이에 따른 지명의 다른 표기를 가급적 많이 수록하고 있는 점에서 고대 한자음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고구려어는 다른 언어들과의 상관관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을 드러낸다. 본고에서는 고구려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다른 언어들과 비교해봄으로써 고구려어의 의의를 되짚어보도록 하겠다.
2. 지리지에 나타난 고구려어의 흔적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의 권35와 권37에 고구려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一云’이라 하여 한 지명에 한자의 음을 빈 표기와 그 새김을 빈 표기가 나란히 제시된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고구려 언어의 잔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록이다. 과거 삼국의 언어는 사뭇 달랐기 때문에 신라는 통일을 이룬 뒤 나라 안의 많은 지명을 같은 방식으로 통일할 필요를 느껴 경덕왕 16년(757)에 한자 2글자의 지명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지명 표기는 이 통일되어 개명된 지명을 적은 것이다.
옛 지명
개명된 지명
현재 지명
비고
馬忽
堅城
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