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자』의 영향
최근 연구로 미루어보아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상당한 부분에서 『장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연암(燕巖)과 『장자』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장자에 대한 연암의 관심을 도강록(渡江錄)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의 바탕에는 당
루쉰의 아명은 짱서우(樟壽)였고 자(字)는 위샨(豫山)이라 했다가 후에 위차이(豫才)로 바꾸었다. 본명은 쪼우수런(周樹人)이며 루쉰(魯迅)은 1918년 북경의 『신청년(新靑年)』에 첫 번째 백화(白話)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 쓴 필명이다. 이후의 주요 작품도 같은 이름으로 출간했기에
루쉰은 새롭게 지은 필명이다. 이외 영비(令飛), 하간(何幹) 등 100개 넘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반정부 논객으로 많이 활동하였다. 중국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저우쭤런과 생물 연구자였던 저우젠런은 그의 남동생이다. 대표작으로 『아큐정전(阿Q正?)』, 『광인일기(狂人日記)』 등이 있으며, 특히 단
광인일기>를 발표했다. 또한 “오사운동”을 전후해 노신은 “신청년”의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문학가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이 시기 노신은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자들과 뜻을 같이하여 “반제반봉건(反帝半封建)”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서 1926년까지 북경대학, 북경사범대학, 여명중학 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