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여전(均如傳)』(1075)의 「제팔 역가현덕분자(第八譯歌現德分者)」에 나오는데, 당문(唐文) 즉 한문(漢文)과 대비하여 우리말 표기법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②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서 우리말의 문장 전체를 그대로 적던 방법이다. 향가에 사용되어 '향가식 표기'라고도 한다. ③ 대개 실
보현보살의 모습과 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 어디에 실려있나?
보현십원가는 <<균여전>>에 실려있다. 원명은 《대화엄귀법사주원통수좌균여전(大華嚴歸法寺主圓通首座均如傳)》이다. 균여의 제자들이 제공한 자료에 의해 찬술되었다. 전체 10문 중 제7문인 〈가행화세분(歌行化世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는 과거제도가 처음 실시되는 등 새로운 시대의 이념과 제도가 정립되는 가운데 이를 외면하고 지나치게 교조적인 경향을 보임으로써 향가의 역사적인 기능을 다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균여전』에 나타난 향가의 특성과 기능
①불교포교를 위한 발원 기원요의
10구체 향가의 일반적 구성법인 '기-서-결'의 3단 구성.
① 기(1-4행, 전단) : 군.신.민의 도리 - 가족주의(은유) ⇒ 효(孝)(→忠으로 연결)
임금을 아버지, 신하를 어머니, 백성을 어린 아이로 바꾸어 위정자들이 정치를 잘해서 백성을 자신의 자식을 양육하는 것처럼 잘 보살펴야 백성들도 위정자의 사랑을
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
6.1.1 건국신화의 재현
◆ 건국신화의 재현 과정
- 신라 말 :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이 약화 , 항거 세력이 도처에서 나타남
- 진성여왕을 분기점으로 신라는 영토와 주민을 보존하기 어려운 처지로 떨어지고, 전국이 군웅할거의 터전이 되었다.
- 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