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록에서 박지원은 '형가가 누구를 마음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무심결에 나온 군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한 자루 비수를 가슴에 품고 원수의 소굴을 향하여 들어갈 바엔 진무양 한 사람이라도 그만인 터인데, 다른 자객이 여기 또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형가가 말하는 '친
봉황성을 넘어서 안시성이... 중국의 역사를 넘어서 우리 역사를 다시 쓰다
고구려! 난 박지원이 고구려를 말한 것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요즘처럼 고구려가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 때, 박지원의 고구려에 대한 주장은 속이 뻥 뚫리게 했다. 현재 고구려 땅은 북한 땅에 있다. 그런데 중국은 심정적으로
봉황성(鳳凰城) 돌아들어 고향 어디메오./ 팔도하(八渡河) 가에 갈잎에 자리 보아/ 삼경(三更)에 겨우 든 잠을 여울 소리에 깨과라.
⒝ 난하(灤河) 서릿달 고죽촌(孤竹村) 눈 진 길에/ 만리(萬里)를 돌아드니 제향(帝鄕)이 거의로다./ 천애(天涯)에 외로운 꿈은 절로 돌아 가나다.
⒞ 장성만리(長城萬里
봉황성, 요동, 심양, 백기보, 광령 등을 거쳐 12월 6일 쌍양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기록이다.
2권은 12월 7일 쌍양점을 떠나 산해관, 고려보, 옥전현, 계주, 연교보를 거쳐 19일 북경에 들어가 관에 머물며 황성 구경한 일과, 치형 치형의 성씨나 직책은 정확치 않다. 통사通事였거나 서장관을 보좌하던 군
봉황성-책문을 거쳐 의주로 오는 과정에서 밀수가 이루어 졌다. 여마제는 세폐방물을 실은 쇄마가 의주에서 책문으로 가는 도중에 사고가 있을까 우려하여 의주부가 공쇄마 수십 필을 책문까지 딸려 보내는 제도이다. 연복제는 사행이 귀국할 때 책문에서 의주로 오는 동안 敗傷하는 말이 있을까 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