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하다. 따라서 ‘從’대신에 ‘從來’로 대체시켜야 성립한다.
<84>從來不看. 지금까지(여지껏) 안본다.
<85>從來不想. 지금까지(여지껏) 생각하지 않는다.
<86>從來不問. 지금까지(여지껏) 묻지 않는다.
湯廷池(1990:30)는 부사 ‘從來’는 부정식에만 쓰이고, 이와 同義語인 ‘向來’는 긍정
불쌍히 여겨 이도령이 가던 박색고개(임실고개-남원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장사 지내니 그 곳을 일러 박석고개라 하였다."
2) 실존인물설
춘향·이도령이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은 1965년 4월 26일 남원에서 도로공사 중에 「성안의부사비석」이 출토되어 열녀 성춘향은 가공인물이 아니라 "춘향은
일반언어학강의>)처럼 작고 후에 간행되어 판을 거듭하였다. 의미론을 어원론 및 통사론과 대립시켜 의미 발달의 지배 원리를 찾는 학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 1825년 경에 수립된 의미론은 라이지히와 그의 제자 하제(Hasse,1808~1887)로 대표되나 고전학을 벗어나 널리 퍼지거나 많은 관심을 끌지 못
문학 작품들을 올바로 읽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국어사의 연구는 한국언어의 흐름과 계통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국어사의 연구는 그 민족의 정통성과 서로 결부되는 것으로 한민족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대 한국어 시기에는 한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료는
노력은 시조 부흥론이다. 주로 중인지식계층에 의해 명맥을 이어온 시조는 일본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한국적인 것을 발굴하고 지킨다는 명목 아래 한국 지식인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적 제스처에 불과하던 시조를 정당하게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병기에 의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