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회주의 혁명과 북조선민주여성총동맹의 창립(해방~1950년대)
해방 직후 북한 각지에서는 여러 여성단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었다. 주로 유한계급이나 지식층 여성들로 구성된 이 단체들은 조직원칙과 투쟁 강령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단체들을 규합하여 1945년 11월 18일, 평양에서 북조선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은 북한여성의 가정생활, 사회생활, 노동생활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첫째, 북한여성의 가정생활에서의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은 <가정의 혁명화>형태로 나타났다. 이 용어는 1968년 개최된 조선민주여성동맹 전원회의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여기에서는 북한의 모든 여성이 가정의
전인민의 사상 교양을 위해서 근로단체는 원칙적으로 당 밖의 모든 군중을 포괄하도록 되어있다. 북한은 사상 교양단체로서의 특징 때문에 이들 단체로서의 특징 때문에 이들 근로단체들 간에 구성원의 복수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당원 역시 근로단체의 간부가 아니면 동맹원이 될 수 없다.
북한의 여성 정치가. 1954년 조선민주여성동맹 순안군 위원장, 1957년 중앙호위부 비서를 지냈다.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金平一)을 낳고
김성애 : 김정일은 자신의 계모인 김성애와 그가 낳은 김평일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김성애는 1950년 한국전쟁 때 참전한 바가 있으
북한과 같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주장하여 민중들의 호감을 얻었다. 이에 따라 전평 해체한 후에 농촌지역은 좌익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리고 청년, 여성, 문화인 활동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다. 청년단체들은 당시 정치투쟁의 선봉에 서있었다. 좌익청년들은 조선청년총동맹<1945,12>에 소속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