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을 만들 당시에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었던 백제인 아사달을 불러 탑을 만들게 했는데 아사달이 탑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는 동안 시간이 몇 해 흘러 고국에 있는 그의 아내인 아사녀가 남편을 그리워하여 불국사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탑을 완성하기 전까지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견해2)
불국사(佛國寺)와 석불사(石佛寺)는 경주 토함산의 기슭과 정상에 각각 위치하고 있어, 두 사찰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듯하다. 실제로 현재는 흔히 석굴암이라 칭해지는 석불사가 불국사에 부속된 암자로 되어 있다.
이러한 두 사찰의 관계는 역사 전승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유사}에
불국사의 대웅전의 크기와 석가탑의 1층 탑신 크기 에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Ⅱ. 석굴암의 역사적 배경
경주 석굴의 창건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현세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세부모를 위하여 석불사를 세워 신림?표훈 두 성사를 청해서 각각 거
역사적 배경과 의의
석굴암의 본존불은 똑바로 동해를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해중의 한 지점인 동해구를 응시하고 있다. 석굴암의 위치는 신라 왕조의 중요한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동해구를 의식적으로 향하도록 선정하였다는 것이다. 동해구란, 삼국통일의 영주인 문무왕(文武王)의 해중릉
(1)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른 창건 역사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시대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새로운 사찰의 건립 소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찰 건립 후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