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떳떳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사림이 부족하게 여겼다. 반정 뒤에는 관직을 맡지 않고 늙었다 하여 고향에 물러가기를 청해서 5년 동안 한가하게 휴양하다가 졸하였는데 뒤에 양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훈구파인 채수(蔡壽)는 58세때인 1506년 중종반정이 일
序論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어 줄 독자를 기대하며 소설을 창작한다. 즉 소설은 직접 구연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매체와 경로를 통해 독자와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매체와 경로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구실을 하고 있으며 이는 곧 표기형식과 유통방식이라
설공찬전〉은 이미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으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헌부는 왜 채수를 탄핵한 것인가?
채수는 〈설공찬전〉의 문제 전에도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이것은 《유양잡조》사건과도 비슷한 예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설공찬전〉 사건
◎소설 유통의 위기!
3. 제 3차 《명기집략 사건》
◎정치 싸움의 불똥이 소설에게-①
괴탄하고 불경스러운 책이옵니다.
제 1차 《유양잡조》사건
제 1차 《유양잡조》 사건성종
괴탄하고 불경스러운 책이니, 전하께는 맞지 않습니다. 소신은
이런 책을 주해할 수 없사옵니다.(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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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찬전>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문학적 의미 재고(再考)와 반추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격적 논의에 앞서 본 Ⅱ장에서는 <설공찬전>의 연구사 검토 차원에서, 이때껏 작품외적으로 연구된 쟁점들을 조금씩이나마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 작가 “채수” 정만조, 「채수」,『한국민족문화대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