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장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도공1140명을 호적에 올렸으며 나라에 바치는 세금 대신 자신이 만든 그릇을 바치도록 하였다. 당시 겨울은 추웠으므로 쉬게하고 봄, 여름, 가을 9개월을 세 팀으로 나누어 일을 시켰다.
이처럼 세종은 도자 그릇을 사용하며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관청도 두었으며 재료를
사기장 신한균
기자에몬 井戶茶碗(조선 16세기)은 일본에서 천하 제일로 치는 高麗茶碗(고려차완)이다.
그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준 곳이 일본이다.
한국은 이 막사발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井戶茶碗은16세기경에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져 일본으로 넘어가 "茶碗"으로 사용되면서 "국보"로 지
기억 속에 길이
남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고려청자를 만드는 법은 안타깝게도 후손
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 까닭은 고려 사
회가 도자기 기술자를 ‘사기장’이라 부르며
푸대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자기 만드
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도 줄고, 도공들도
자신의 기술을 물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사기장인이 처음으로 청자에 응용한 것이며 다른 나라의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유일의 장식기법이다.
청자의 문양에는 상감문 외에도 음각문, 양각문, 뚫어서 장식을 가한 투각문, 백토로 문양을 그린 퇴화문, 철분을 원료로 한 철사안료로 그린 철회문(鐵繪文)․철채(鐵彩), 구리
사기장(沙器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자기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으로 흔히 사기그릇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우리 옛 도자기라고 하면 으레 고려청자, 조선 분청자와 백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옛 도기를 포함해야한다.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