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이 배치되었다. 그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
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화성은 드디어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이 확정되었다.
화성 관리 사무소에서 나누어준 [화성 안내문]이라는 조그마한 팸플릿에 의하면 화성은 성곽의 전체길이가 5.52Km이며 거기에 동쪽으로 창룡문, 서쪽으로 화서문, 남쪽으로 팔달문, 북쪽으로 장안문 등 4대문을 내
1)성벽과 물매
성곽은 겉에 보이는 커다란 돌을 쌓고, 그 위에 여장을 올린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성곽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석축 쌓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돌을 뒤로 후퇴해 쌓음으로 석축이 안정되고 뒷면에 쌓은 흙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도록 석축의 흐름을 잘 잡는 것은
Ⅰ. 서 론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잘 먹고 잘살기를 원하지 못 먹고 먹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잘 먹고 죽은 귀식 때깔도 좋다’라는 말이 유리 속담에 있을까?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잘사는 강남을 최고의 상류층으로 보고 있어 그곳에 사는 것을 최고의 선망의 대상으로 하고 있
사적인 築城作業이 성공을 거두기까지에는 국왕 정조를 비롯한 蔡濟恭(채제공). 趙心泰(조심태) 등의 관료, 實學者 鄭若鏞(정약용)과 畵家 嚴致郁(엄치욱) 등 많은 사람들의 열성과 기술적 創見 그리고 전국에서 모여든 募軍인 衆民들의 노력이 합쳐져 이룬 결과였다. 특히 茶山을 비롯해 성곽설계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