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조선왕조 도읍의 경계와 통로-서울 성곽과 사대문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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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사] 조선왕조 도읍의 경계와 통로-서울 성곽과 사대문 답사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차례-

1. 서론
1) 답사 목적과 의의
2) 답사 방법
3) 배경 지식 - 조선건국과 새 수도

2. 서울 성곽과 사대문
1) 서울 성곽
2) 사대문
(1) 흥인지문(동대문)
(2) 숙정문(북대문)
(3) 돈의문(서대문)
(4) 숭례문(남대문)
3) 사소문
(1) 광희문(남소문)
(2) 혜화문(동소문)
(3) 창의문(북소문)
(4) 소덕문(서소문)

3. 숭례문 복원사업

4. 결론

5. 참고자료




본문내용
3) 배경지식 - 조선건국과 새 수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즉위와 거의 동시에 황급히 천도를 명하였고, 한양의 건설은 천도 후에 이루어졌다. 도시 기반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천도를 감행한 것은, 구왕조의 지배세력이 그대로 남아있는 개경의 경제기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왕조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도시를 건설함으로서 새 왕조의 권력기반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한양 이외에도 계룡산, 도라산, 적성, 무악, 송림과 같은 수도 후보지들이 있었다. 그 중 한양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남쪽에 한강을 끼고 있어서, 수로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지라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삼국문화가 골고루 스며들어 지방색이 가장 적다는 점, 그리고 풍수 지리적 명당임을 바탕으로 최종 천도지로 결정되었다. 풍수지리 사상이 한양 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통설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유교적 역성혁명과 경제적 합리성이 더 중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한양 천도가 결정되고,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궁궐과 종묘, 사직이 배치되었다. 그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건물의 배치에서 풍수지리의 영향을, 성문의 이름에서 유교적 윤리덕목과 오행사상을 엿볼 수 있다.


2. 서울 성곽과 4대문

1) 서울 성곽
서울 성곽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약 17km 정도의 성벽은 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그림 지역을 나타내는 글씨가 새겨진 성돌
이렇게 긴 성곽을 쌓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공사 관리 시스템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 거대한 공사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는 성벽 돌 위에 새겨진 글자에서 찾을 수 있다. 한성 성곽의 길이는 총 5만 9천 5백 척으로, 이것을 600척으로 나누어 각 구간마다 천자문으로 순서를 매겼는데, 백악의 동쪽으로부터 해서 천자(天字)에서 조자(弔字)까지 모두 97개의 구간을 만들었다. 지금 남아있는 성곽의 돌에도 이런 구간을 표시하는 글자들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나뉜 97개의 각 구간에는 각각에 알맞는 지역에 담당시켜 해당 지역 장정들이 한성에 올라와 성을 쌓게 하였는데, 지명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새겨진 돌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공사 관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