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殷本紀)」,「주본기(周本紀)」,「진본기(秦本紀)」속에 드러나는 '태사공 왈' 부분을 통해서 사마천이 『사기』속에 '태사공 왈' 부분을 넣은 이유와, 그 글을 통한 새로운 해석을 해보고, 두 번째로「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속에 드러나는 논찬의 짜임새를 통해서 주관적인 평가로써 역사를 비
진시황(秦始皇) 시대에 해당된다. 천퉁성, 위의 책, pp.160-161 (재인용)
이렇듯 사마씨 일족이 각지에 흩어져 사림문화의 창조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은 전국 시대 사관들이 사림 계층으로 진출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천퉁성, 위의 책, p.161
둘째 일부 사림들은 역사학의 차원
약점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끈다면, 유방의 강인하고 끈덕진 성격은 우리 범인이 은연중 갖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관심이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 내재한 두 개의 성향이 숨 막히는 대결을 벌이는 곳이 바로 항우 본기이다. 진시황을 멀리서 바라보고 ‘저놈의 천하를 엎어놓고야 말겠다.
극치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문장의 기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성적 통찰과 감성적인 이해를 통한 추체험의 발로였고 전편, 특히 각편에 삽입된 ‘태사공왈’란에 저자 자신의 평어 부분에 흐르는 예리한 사안과 비판정신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