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4세기 고려사회는 12세기 말 이래 파행적인 정치형태인 무인정권의 등장, 농민항쟁의 폭발 등에서 파생된 심각한 대내적인 모순과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또한 元(원)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대외모순까지 중첩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의 정치․사회사는
구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여러 국가를 하나로 융합하여 성립한 국가는 그 모순을 보완하려는 방향으로서 전환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로 하게 된다. 이는 백성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하며 국가의 통일의식을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지배자가 된 그들에게 안정을 가져다주
1.고려시대
고려 건국초기에는 신라의 지방제도를 답습하면서 지방토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준자치적 지방통치를 행하다가, 제6대 성종 때부터 당나라 제도를 도입하여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중앙집권적 관료제도를 확립하였다.
1)사심관제
사심관제도는 건국공신에게 그 출신지방의 통치를
고려
태조왕건, 민족을 재통일하다
신라 항복 (935)
후백제 멸망 (936)
발해 유민의 포용
태조 북진 이후의 영토
개국 공신과 지방호족을 관리로 등용
유력한 호족과 혼인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사심관 제도
:지방 세력 출신으로 중앙 관료가 된 사람을 임명하여 그 지방을 통제하도록 한 제도
기인 제도
:
사심관 제도를 들 수 있겠다.
사심관 제도는 고려의 초기에 건국 공신에게 출신 지방의 통치를 맡겨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가지고 지방을 다스리게 한 제도이다. 이는 지방분권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지방자치에 유사한 제도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고려에는 향직 단체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