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과제라고 정의하였다. 즉, 명제를 유의미한 명제와 무의미한 명제로 구별하고 경험적으로 무의미한 명제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검증가능한 명제만이 진정한 과학적 명제이며, 진정한 지식이라는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조용현 1992『칼포퍼
‘감시자’
⑦아동들은 성장하면서 중요한 타인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기대 사항들을 자신들의 인성 속에 점차적으로 통합해 나간다. 이러한 기대사항들이 개인의 도덕적 가치가 된다 : 가치를 내면화하면 외부로부터의 제재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개인 내부의 ‘양심’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
포퍼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지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제도교육에 환멸을 느껴 고등학교를 중퇴한다. 그러나 그의 지적인 욕구는 그로 하여금 빈 대학에 청강생으로 등록하게 하였고,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경험을
기사 작위받음
1976년 런던 왕립 학회의 회원으로 선출
1982년에도 명예의 훈장직위 받음
1994년 92세 나이로 별세
1945년 '부지깽이 스캔들’
1950년대 중반 루돌프 가르납과 논쟁
토머스 쿤과 논쟁
1961년 독일의 사회학 대회에서 하버마스와의 논쟁
1971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마르쿠제와 TV토론
모든 영역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건 분명하지만, 그 변화의 저변에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물신화 및 예속화가 인간성의 상실, 인간주체의 몰개성화와 소외를 가져온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사회를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 본 두 철학자 마르쿠제와 포퍼를 비교적으로 고찰해 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