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의’란 단어는 복음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태복음에서만 예수님에 의해 7번의 사용되었다. 그 중 다섯번의 기록이 산상설교에 수록됨으로 이 단어는 산상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말씀들의 특징을 지을 뿐 아니라 산상설교의 교훈 전
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기독교 희락주의’를 추구하는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은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며 선한 것이지, 죄가 아니다.” 또한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번을 “하나님을 영원
대한 진리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는 넘어서지 말아야 할 부분에까지 접근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서 구체적으로는 실현되었는데 그것은 이념의 통합이라는 주제 하에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절대적인 하나님
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신자들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부여하며, 신자의 삶의 격려한다.
그러나 마 7:15~27은 종종 자주 오해되어 왔으며, 그로 인해서 몇몇 신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보장을 과연 어떻게 받을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구제요 쓰고 남는 것으로 하는 자선과 구별된다.
구제란 하나의 권장 사항이 아닌 의무 사항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본 소고를 통해서 신구약에 나타난 구제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제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