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경제적 민족주의의 고양 속에서 많은 저항을 받으면서도 수출입국형의 성장모델을 관철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외채무의 누적과 국민경제의 대외적 종속구조의 심화 그리고 기초산업의 파국이라는 큰 희생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 장에서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수출산업 중심으로 성장해오던 한국경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 오일쇼크 기간 동안 물가의 급등, 수출신장의 둔화, 무역수지 악화, 경기의 후퇴 및 실업증대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에 의해 초래된 경제 위기는 국가와 자본과 노동 간의 화해적 정치구조를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1970년대
적극 외국자본을 끌어들였다.
1차 계획의 성과를 바탕으로 박 정권은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 확립촉진’을 기본목표로 하는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71)을 추진하였다. 식량자급, 수출증대, 철강화학공업의 기계화에 주력한 이 기간에 경제성장률은 10.5%에 이루었다.
생산적 복지의 이념과 내용
IMF체제와 함께 한국자본주의의 그 간 외형적 규모확대위주의 부실경영으로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다. 소득과 임금불평등이 극심해지고 고금리정책으로 불로소득이 커지면서 빈부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 계급모순의 완층지대로서 사회통합을 위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