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죽은 뒤 유교가 천하에 행하여져 여러 학파가 함께 일어났는데, 증자·자사를 거쳐 맹자에게 전한 학이 정통을 이루었다. 맹자는 인의 도를 세워 성선과 야기의 설을 주장하고, 인정의 필요를 역설하였다. 한편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반하여 성악설을 말하고, 예를 강조하며, 권학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언급하셨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수도인에게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삼강오륜이다. 삼강오륜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을 좀 더 살펴보고 수도인이 삼강오륜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기로 하자.
II. 공자의 생애
유교와 관련하여 그 효시인 공자에 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데, “공자는 노(魯) 나라의 창평향(昌平鄉) 추읍(陬邑)에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가 니구(尼丘) 언덕에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노나라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에 공자를
2. 유교의 본질
우리가 유교와 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유교의 본질과 가치관 또는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동양인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을 할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유교의 본질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은" Confucianism "이나 공교(孔敎)라는 말 보다는 학파나 학자의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으로서 삼강오륜의 윤리질서는 조선시대 사회전반을 통하여 상당히 지배적인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삼강오륜은 이와 같은 여러 범주의 행위규범역할규범 중에서 기본적인 것을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강의 규범체계는 대체로 수직적 질서를 지향하는데 비하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