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자의 생애
유교와 관련하여 그 효시인 공자에 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데, “공자는 노(魯) 나라의 창평향(昌平鄉) 추읍(陬邑)에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가 니구(尼丘) 언덕에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노나라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에 공자를
중심으로” <역사상의 국가권력과 종교> 일조각, 2000. p.72
는 말은 결국 종교의 본질적 속성에 상관없이 종교가 역사상 왕권의 존립과 그 정당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에 오직 나 한 사람’을 의미하는 ‘여일인(余一人)’이 갑골문에서 확인되는 것을 보면 유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칼 마르크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막스 베버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다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유교와 경제
종교적 믿음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형이상학적 관심의 지배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었다.
공납제 문화의 중심부 형태와 주변부 형태에 관한 주장은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유교는 중국의 완벽하게 발달된 이데올로기로서 초자연적 힘의 존재를 인정하는 완벽한 형이상학이다. 유
중심으로 한 사서오경을 경전으로 하여, 정치도덕을 실천하는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이다. 유학은 천명을 근본으로 하여 인의예지의 덕을 강조하므로, 조선시대에는 자기 자신을 닦고, 인간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함으로써 종교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유교사상이 국가적 차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