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1. 성립과 발전
BC 37년에 주몽(朱蒙)이 이끈 부여족의 한 갈래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佳江:渾江) 유역에 건국하였다고 한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졸본 지방에서 일어나 동방 침입의 요로인 퉁거우[通溝]로 옮긴 뒤 낙랑군과 임둔군(臨屯郡)의 교통로를 단절시키는
발전, 연결되어 후백제(900-936)와 후고구려(901-918)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일통삼한’의 민족사는 또다시 삼국으로 분열되었다. 즉 후삼국의 성립을 가능케 한 것은 지방 호족세력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후고려의 기반을 계승한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Ⅱ. 나말여
삼국(後三國)의 분열기였는데 935년 신라를 병합하였고, 936년에는 후백제를 격파하여 민족의 재통일을 성취하였다.
왕건은 935년 신라의 귀부(歸附)를 받고, 이듬해 후백제를 멸망시켜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태조는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처해 국호를 '고려'라 하고 북진 정책을 추진해 서경(西
삼국유사」「제왕운기」「세종실록지리지」「응제시주」「동국여지승 람」에 건국신화 수록
* 단군신화를 통해 본 고조선사회 : 제정일치의 사회, 농경사회, totemism, 선민사상의 성립
* 단군신화의 의의 :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
③ 고조선의 사
1. 부족국가의 교육
1절. 부족국가의 성립
부족사회는 여러 씨족의 혈연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부족사회의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유지되어 간다. 그리하여 대소의 족장 사이에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와 같은 지배력의 증대는 국가의 기초를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