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혁운동단체로의 전환
-1898년 봄 독립협회는 반러시아운동을 계기로 개혁운동 정치운동단체로 변모하고. 이완용은 이탈, 윤치호가 회장 대행으로 바뀌었다. 독립협회가 정치운동 단체로 탈바꿈하면서 창립 당시 인물 대부분은 손을 뗐다. 임원진 가운데 이상재, 남궁억, 이건호, 안영수 등만 계속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
눈을 뜬 것은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주시경 선생은 신학문에 접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개화운동에 종사하였다. 배재학당 재학 시절 진보적 학생단체인 협성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으며 독립협회 회원으로 독립신문의 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 서론
삼일운동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과 농민 일반시민까지 전 민중이 거족적으로 참여한 이 활동은 일제의 무단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고 우리민족의 독립을 세계에 표명한 실천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운동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 서양의 과학, 시술을 빌려 왕종국가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자강정책이었고 전면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880년 중국의 ‘총리아문’과 비슷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개혁의 중심기관으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성격의 개화논리는 차츰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