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학(象數學) 이론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숫자로 분류하는 법을 알면 모든 존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2 또는 5라는 숫자를 선호하던 이전의 학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열쇠는 '4'라는 숫자라고 믿었다. 따라서 우주는 4개 부분(해
1. 머리말
청풍김씨 가문은 조선후기 정치사적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다뤄보겠지만 김식 때부터 서울지역으로 편입하였지만 본격적인 정계활동은 김육(金堉)이라고 볼 수 있다. 한당의 영수인 김육은 학문적으로 소옹학(邵雍學)을 바탕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정
1.1 왜 홍대용인가?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와 함께 북학파 성호학파와 대별되며 물성을 중시하며 이러한 물성중시를 근간으로 상수학(象數學))과 경제지학(經濟之學)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다.
의 한 사람으로서 북학파의 과학사상과 철학이론의 영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홍대용은 서구의 과
출발한다. 그리고 이를 ‘운도(運度)’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
이 운도는 원래 음양상수(陰陽象數)의 법칙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예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상제(上帝)인 강일순의 권능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이러한 운도의 조정을 ‘개벽(開闢)’이라고 한다
모두 눈앞에 집중시켜 마치 손바닥 보는 것처럼 할 수 있다.”
수학과 천문학을 강조한 홍대용은 청년시기에 수리정온(數理精蘊)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서양 수학책을 구해 읽음
잠자리에서도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공부에 열중하고, 어려운 상수(象數)문제를 풀기 위해서 밤샘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