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대 중반 이후의 독립운동과 8.15해방 이후 신국가건설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적 이념은 다양하였지만, 학계에서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독립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형태를 보였기에 ‘민족주의 vs 사회주의’가 아닌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의 구도로 설
1. 머리말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모두 실패하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대세를 이루는 2007년에 공산주의 운동사를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산주의 이론자체가 틀렸다고 극단적인 청산을 하는 사람이 생기고, 과거 공산주의 운동은 공산주의 운동이 아닌 국가주도의 자본주의 운동이
1919년 3·1운동의 정치적 세례와
1920-1921 내전시기에 조선인 공산주의 그룹은 활발히 출현
- 러시아지역 한인사회주의단체의 존재와 밀접한 연관
2) 조선인 사회주의자 전위당 창립
- 한인 사회당(고려공산당) 1918
→ 이후 상해파
- 이르쿠츠크현 위원회 산하 한인공산당 창립 1920
→ 이후 이르크츠크파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지도체인 코민테른이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조선문제에 대한 방침’으로서 해외에 전위당을 설립하고, 국내에 내지(부)를 설립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외의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사이의 대립은 지속되었고 국내에서도 해외에 전위당을 설립하는 것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상해파
1920년
한인공산당 결성
1921년 5월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이들은 코민테른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국내에 전위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을 했다.
국내 전위정당의 결성
1921년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대립이 무력충돌로 확대
코민테른 감사위원회: “이 둘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