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회화는 이전에서 근원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적 양태이다. 이러한 풍속화 중심의 조선후기회화는 사진이 없던 당시의 시절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기록화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 소재의 일상성은 미시사나 생활문화사에서 활용될 수 있을 만한 요소를 잘 갖
생활에서 예술의 영향은 홰 예술에서 개화의 기간이 문화의 진보를 이끌기 쉬운지의 표시를 우리에게 준다. 그것은 느낌의 새로운 방법을 공식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시대의 시작이다. 이것 역시 반영의 또 다른 문제의 제안이다. 예술교육에서 광범위한 부주의 는, 느낌교육의 소홀이다. 대부분의
문화 엘리트들의 자기반성, 고급예술이나 예술 개념 자체에 대한 대중문화 진영의 뿌리 깊은 적개심을 어느 정도 중화시키려는 노력, 대중예술에 대한 고급예술 진영의 무조건적인 비판을 반박해야 하는 필요성, 그리고 대중문화를 미학적으로 논의하는 작업을 진행시키는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생활의 전경을 주로 해학적으로 묘사한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 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
조선 화단에 번지기 시작하였다.
A. 천주교화의 전래
대개 종교가 타민족에게 전파될 때 그 종교가 수반해 가져온 문화적인 요소가 종교전달의 교량적 역할을 한다.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과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조선후기의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1715년에 북경에 도착한 이탈리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