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으로 회귀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혁명적이었던 1793년의 선언들과는 달리 테르미도르 반동을 겪은 1795년의 인권선언은 1789년의 인권선언으로 퇴보한 측면을 보이며, 어떤 면에서는 1789년보다 더 폐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천부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소홀한 태도를 보
프랑스혁명은 인류역사의 가장 전형적인 전체(total)혁명이었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근대사의 2대 근원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가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물론 프랑스혁명 당시 충분한 자유,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던 점은
완성 가능성과 진보의 관념을 강조한 계몽사상, 기본적 인권과 사회계약의 관념, 영국 입헌주의의 역사적 전통, 고전경제학과 자유방임 정책론 등 근대혁명을 이끈 사상과 관념들도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1. 자유주의의 원리
서양의 자유주의는 15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상으로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열강의 반(半)식민지적 지위로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서양 열강은 중국에 대한 조계제도를 성립시켜 1844년에 미국도 왕샤조약(望厦條約)을, 프랑스도 황푸조약을 각각 체결했다.
영국의 이러한 오만한 정책과 난징조약을 개정 요구를 하면서까지 더 거
인권리의 대행자요 이를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전자는 국가의 통일, 집중적 권한의 수립, 국민대표의 원리를 낳고, 후자는 인권의 확립과 권력분립의 원리를 낳았다. 그리고 이를 일관하는 것으로 법의 우월성이 강조되며, 근대국가의 특색은 법치국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