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으로 회귀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혁명적이었던 1793년의 선언들과는 달리 테르미도르 반동을 겪은 1795년의 인권선언은 1789년의 인권선언으로 퇴보한 측면을 보이며, 어떤 면에서는 1789년보다 더 폐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천부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소홀한 태도를 보
프랑스혁명은 인류역사의 가장 전형적인 전체(total)혁명이었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근대사의 2대 근원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가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물론 프랑스혁명 당시 충분한 자유,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던 점은
완성 가능성과 진보의 관념을 강조한 계몽사상, 기본적 인권과 사회계약의 관념, 영국 입헌주의의 역사적 전통, 고전경제학과 자유방임 정책론 등 근대혁명을 이끈 사상과 관념들도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1. 자유주의의 원리
서양의 자유주의는 15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상으로서,
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는 계기로 발전하였다.
1792년 여름 루이 16세의 독일탈출 실패 결과 결국 산악파는 1793년 1월 7일 국민의회는 단두대에서 361: 360 단 1표차로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자코벵주의자는 민중과의 연계성의 강조하여 혁명과정에서 파리 민중이 부르주아
인권리 우위론으로만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인권 문제는 해당 국가의 현재 처해있는 발전 단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으며 국민 국가 건설과정에서 형성되는 주권은 일시적으로 개인 권리에 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많은 국가들 역시 경제 발전 단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