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주류를 이루었고 서독에서는 보르헤르트 등의 소위 전후 드라마가 많이 쓰여 졌다. 50년대에는 세계적 조류에 부응하여 부조리극이 성행하였다. 60년대 이후에는 서독에도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등장하고 또한 페터 바이스 등이 ‘기록연극’이라는 장르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Ⅰ. 작품 외적 요소
1. 시대적 배경 (1815~1848)
1.1 정치적 상황
1815년부터 1848년까지의 기간은 통일 국가를 이루려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복고주의에 짓눌려 해방전쟁에 참가한 애국 지사와 시민 지식인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 시기였다.
18세기부터 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한 시민 계급 지식
괴리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판한 『유년기의 구도』(1976) 이후 당의 문화노선으로부터 이탈하였다. 여성 억압의 문제를 추적한 『카산드라』(1983) 역시 독자적인 문학관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볼프는 뷔히너 문학상, 유럽 문학을 위한 오스트리아 국가상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연극 공연 등으로 살아가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범법자로 오인받기 일쑤인 도시 하층민들의 삶을 화면에 담아냈다. 이 밖에 중세의 파리 시가지 모습이 잘 재현되어 있어 중세 도시의 생활상을 유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차용구,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푸른역사, 2003, p120~1
연극과 많이 닮아 있다. 영화에서도 조명과 미장센들이 강조되었듯이 연극 역시 미장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각본의 내용을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