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화의 전래
대개 종교가 타민족에게 전파될 때 그 종교가 수반해 가져온 문화적인 요소가 종교전달의 교량적 역할을 한다.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과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조선후기의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1715년에 북경에 도착한 이탈리아의 선교사 Castiglione는 청의 궁정에서 활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접해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가 그 복음의 접촉의 시작이 자국인에 의해서 경험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천주교에 대해 살펴보자. 조선에 천주교가 전해지게 된 것은 중국을 통해서이다. 조선은 중국과 오랜 세월에 걸쳐 수교하고 왕래가 잦았으므로 조선인
천주교 내부의 문제, 즉 수도회 간의 대립 등을 전례 논쟁의 배경, 원인으로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주겸지 저, 전홍석 역)에서는 예수회 이후에 도미니크회를 비롯하여 프란시스코회 등의 수도회가 중국에 오게 되고, 그에 따라 선교사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업무상 마
천주교 신자 박해와 프랑스 선교사 살해에 대한 보복과 동시에 조선과의 통교를 시도하다가 조선 측의 반격으로 격퇴된 사건이다. 이 전쟁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1866년 9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의 조선 해안과 한강을 탐사한 제 1차 조선원정과 1866년 10월 11일부터 11월
조선 후기 사회에서의 '서학'이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는 서양 문물에 관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새로운 종교로서의 천주교를 뜻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많은 사람이 접하였던 천주교와 과학 기술은 그 전래 과정과 영향을 고려할 때 서로 분리하기가 매우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