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또는 순수시라는 개념을 내걸고 우익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다(1946), 시분과위원장을 역임하며 당시 문단을 주도한 좌파의 계급문학 또는 경향문학에 반대하여 조선문학가동맹과 맞섰다. 남조선대(동아대) 창립시 교수(1946),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문화부장, 정부 수립 후 문교부 초대 예
모더니즘이 한창 꽃피우던 시기에 그 수명을 다하고 1930년대 후반기를 전후해서 등장한 서정주, 유치환, 김상용, 김광섭, 김현승, 오장환, 이육사, 박남수, 오희병, 등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그들은 각기 개성적인 시작태도를 보여 주고 있지만, 시문학파의 정신을 계승하고, 모더니즘에 반발하면
중심으로
정지용의 초기 시는 주로 새로운 감수성과 감각의 출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된다. 지용 시의 새로운 형상화 방법이란 객관적 사물 세계를 시적 주체에 의해 대상화 1.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
하고, 이 대상과 주체의 관계 속에서 시가 구성되고 있는
문학 유파로 생명파가 등장한다.
생명파는 프로 문학의 이념, 순수시를 표방한 『시문학』의 유미주의적 경향과 관념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감각적 기교주의와 반생명성에 반발하여 등장한 일군의 시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생명파의 일원으로는 『시인부락』(1936년 11월)을 중심으로 한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