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 사상이다. 악마를 항복시켜 구원한다는 사상은 ꡐ신인종ꡑ의 기본사상이다. 셋째, 국가를 위태롭게 마군, 즉 적군에게 항복받는 진호국가 사상으로 이미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치하며, 넷째, 석굴본존의 일장육척석불상의 문제이다. 경전의 첫 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 약탈이 횡횡하던 때다. 1907년 일인 우체부가 석불사의 1000여년 침묵을 자신이 깬 것처럼 과장 선전하여 일인들에게 노출되었다. 이것이 수난(受難)의 역사 첫 장이다. 그 후 각종 석상이 없어지고 복장유물(伏藏遺物) 생각으로 본존불 둔부를 정으로 깨는 일도 생겼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의
불교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던 통일신라의 문화는 잦은 왕위 쟁탈전과 지방 호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8세기 말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귀족들의 내부 분열과,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상류계급이 될 수 없었던 6두품(六頭品)세력의 불만이 커졌다. 그리고 경주 귀족의 호화스러운
신라의 찬란한 문화와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뜻하며 전체적으로 낙관의 이미지를 응용한 독특한 느낌을 담아 경주의 아름다운 정신과 문화를 상징합니다.
신라 천년의 경주는 유네스코에 의해 불국사, 석굴암과 경주역사유적지구(5개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수 많은 문화재 그리고
있다. 대부분 보살상인 이 감불좌상은 본존불의 바로 전방과 그 후방인 십일면관음상의 상면만을 피하고 그 나머지 벽면에 배치되어 하늘과 땅과의 중간에서 이 석굴의 영광과 장엄을 찬미하고 환희하는 것 같다. 조각 또한 주위의 벽에 있는 다른 여러 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