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석굴암 심층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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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석굴암] 석굴암 심층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석굴암의 과학적 구조
1. 석굴암의 보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
2. 석굴암 내부의 공기 순환 메카니즘(숨쉬는 석굴암)
Ⅲ. 석굴암 불상조각의 예술적 구조
1. 불상조각의 형식
1) 상호(相好)
2) 자세(姿勢)
3) 인계(印契-印相)
4) 불의(佛衣)
5) 장엄구(莊嚴具)
6) 광배(光背)
7) 대좌(臺座)
2. 불상조각의 현상(現狀)
1) 본존불좌상
2) 본실의 보살상
3) 십일면관음보살상
4) 십대제자상
본문내용
석불사는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인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것이다.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현생(現生)의 모든 것은 전생(前生)의 업보(業報)-에 기인한 김대성 설화를 보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것이 석불사이다. 우리가 현재 석굴암이라 부르는 것은 일인들의 실수를 따르는 것으로, 부처가 있고 스님이 머무는 곳은 모두 절(寺)이라고 해야한다. 석불사는 일단 석굴법당(石窟法堂)에 본존불(本尊佛)이 있고 옛 기록- ꡐ삼국유사ꡑ, ꡐ산중일기(山中日記)ꡑ -에 보면 스님들이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석불사의 석굴은 인공 굴로 딱딱한 화강암 지대인 우리 나라에서는 고육직책이자 찬란한 성취이다. 석불사의 완성시기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이 경덕왕 10년(751)에 착공해 20-30여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석불사는 완성 후 고려시대 일연이 거론했고 조선(朝鮮)시대 화첩이나 기행문에 간간히 등장한다. 이런 석불사가 전면에 등장한 때는 한일합방을 전후 해 문화재 밀반출이 성행하던 시기이다. 당시는 산 중 사찰의 스님들의 의병활동으로 산 아래로 내려와 사찰 문화재 약탈이 횡횡하던 때다. 1907년 일인 우체부가 석불사의 1000여년 침묵을 자신이 깬 것처럼 과장 선전하여 일인들에게 노출되었다. 이것이 수난(受難)의 역사 첫 장이다. 그 후 각종 석상이 없어지고 복장유물(伏藏遺物) 생각으로 본존불 둔부를 정으로 깨는 일도 생겼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의 문화재가 곧 일본의 재산이라는 총독부 정책에 따라 석굴은 해체, 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석굴 일부 천장 보수에 당시 신소재인 시멘트를 천장 전체에 발라 내벽이 숨을 못 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또한 해체시 발견한 지하수로를 아연관으로 막아 버렸다. 그러나 당시의 첨단 소재로 덧칠한 석굴은 그 옛날 자연 그대로의 과학 원리를 벗어나 그 후 심한 습기 때문에 보일러로 연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여러 조각품들을 해체해 석굴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이런 총독부의 몰 역사적 행동은 해방 후 우리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 때 석굴 천장에 빗물 방지를 이유로 다시 시멘트가 칠해지고 확신할 수 없는 고증과 습기 방지라는 이유로 전실에 목조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석불 보호 차원에서 유리창이 쳐졌다. 일제시대부터의 이런 일련의 조치는 모두 석굴에 해(害)만 끼쳐 현재 석굴은 에어컨의 진동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석종교와 예술, 과학이 최고의 조화를 이룬 석굴에 대한 진지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