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영국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영국국교회(성공회)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주도권을 쥐고서 국교회에 동참하지 않는 모든 비국교도들을 심하게 박해하고 있었다. 비국교도들이 영국교회에 대해 반대했던 것은 유아세례, 교권주의, 침례의 의미와 방식, 성경의 권위, 신앙
선교현장에서 일어나는일이다. 복음을 선포하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는데 이스라엘은 복음에 더 저항한다. 그래서 그들의 심장이 더 완악해진다. 이것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사야의 선포가 이스라엘 심장을 완악하게 했듯이 바울의 복음선포도 이스라엘 심장을 더 완악하게 했
교회는 신앙인들의 모임, 사귐 혹은 공동체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생각할 때, 마치 교회의 창설자가 신앙적이고 사교적인 신앙인들인 양 착각이 일어나기가 쉽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모임, 사귐이 없다면, 분명히 교회가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사회사업 역사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오랜 동안 펼쳐진 교회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져야 한다. 이 이유는 한국교회에 교회사회사업을 전달한 서양 선교사들이 구미 여러 나라의 교회에서 전해 내려온 사회봉사 신학, 기독교 사회복지 이념, 교회사회사업의 제
로마교회는 교황이 교리와 윤리의 가르침에 있어서 무오한 권세를 활용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으면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으면 그리스도가 있다. 모든 것을 거꾸로 전개하였다. 교회에 연합하면 구원에 이르고 교황에 충성하면 구원이 확실하고 구원에 이른다. 그런 가르침은 성경에 없는 로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