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의 민속 음악은 우선 그 지역의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 기폭제 역할을 한 그룹이 비올레따 빠라의 영향을 받은 로스 하이라스(Los Jairas)이다. 그리고 곧바로 안데스음악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로스 하이라스와 그 이후의 음악가, 그룹들은 미국 팝 음악에
안데스의 산길에서 안데스인들의 감정을 대변해오던 안데스 민속 음악은 16세기에 비극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잉카 제국이 정복된 이후 안데스 지역은 스페인 부왕령에 의해 통치되었고, 식민 통치하에서 안데스 원주민들은 공식적으로 전통음악의 맥이 단절되는 것을 두고 볼
음악인인 아따왈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에 의해 1940년대부터 민속자료의 수집과 연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전통 민속의 복운동적 성격을 띠고 출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운동의 시발점은 1970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의 출범 전후로 볼 수 있으며, 보다 근원적인 동력은 쿠바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쿠바
인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역적 특성으로 인한 것은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인 잉카문명과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등의 ‘유적’이 있다. 그리고 민족성으로 인한 것은 그들의 광기어림이 묻어나는 ‘축제’와 애수 어림이 묻어나는 ‘음악’을 크게 뽑아 볼 수가 있다.
음악이었고, 그 외의 지역은 영미권의 음악을 받아들이거나 자기 나라의 고유 민속음악을 고집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미 음악의 강세가 지겹게 이어지면서 1980년대 중반에 와서는 마침내 영미 아닌 나라의, 그때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전통음악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화라는 것을